지난달 12일 서울 종로구 더케이트윈타워 한국마이크로소프트 11층 대형 강의실. 전북 완주 봉서초등학교 엄태건(29) 교사가 초등교사 80여 명 앞에서 특강 중이었다. 주제는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몰입하는 수업, 어떻게 해야 할까'. 엄 교사는 마이크로소프트사의 인기 높은 게임인 마인크래프트를 활용한 수업 사례를 설명했다.
마인크래프트는 컴퓨터 혹은 스마트기기 모니터 속에 다양한 종류의 블록을 쌓아 자기만의 세계를 3차원으로 만드는 게임이다. 엄 교사 옆의 대형 스크린엔 엄 교사 반 아이들이 만든 마인크래프트 이미지가 떠 있었다.
전북 완주 봉서초 5학년 학생들이 마인크래프트로 완성 중인 신석기 시대 주거지 제작 과정의 한 장면. 푸른 들판을 움푹하게 파서 주거지를 만들었다. 주변의 푸른 색은 바다 혹은 강을 시각화 한 것이다. [엄태건 교사 제공]
엄 교사는 "마인크래프트로 청동기 시대 고인돌을 만들어 보게 하면 고인돌의 모습은 물론이고 실제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도 아이들이 쉽게 이해한다. 아이들은 마인크래프트로 무엇이든지 그려볼 수 있고, 이 과정을 아주 재미있어 한다"고 소개했다. 엄 교사는 역사 외에 국어·수학·사회·진로 수업에도 마인크래프트를 활용한다고 소개했다. '아기돼지 삼형제' 속에 돼지 삼형제가 지은 집이나(국어), 자신이 되고 싶은 직업인이 일하는 공간(진로)을 마인크래프트로 꾸며 보게 하는 것이다.
엄 교사는 2016년 강단에 처음 섰다. 첫해부터 '마인크래프트를 수업에 활용하고 있다. 아이들이 마인크래프트를 아주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는데, 마이크로소프트가 2016년 4월 이 게임의 교육용 에디션을 출시했다. 엄 교사는 '전북창의공학교육연구회' 교사들과 함께 마인크래프트를 수업에 활용하는 방안을 연구했다.
전북 완주 봉서초 5학년 학생들이 마인크래프트로 완성 중인 고인돌 제작 과정의 한 장면. [엄태건 교사 제공]
이날 엄 교사 특강은 한국마이크로소프트가 이날 하루 마련한 '2018 마이크로소프트 교사 연수' 강의 중 하나였다. 페이스북으로 교사 대상의 연수를 공지했는데, 36시간 만에 교사 200명 신청이 마감됐다. 이날 연수는 페이스북 라이브로도 생중계됐다. 온라인으로 특강을 들은 교사 등도 현재까지 2000여 명에 이른다.
MS 프로그램, 수업 활용 '혁신 교사' 전 세계 7500명, 국내도 52명
이날 연수는 오전 10시30분 시작돼 오후 5시까지 이어졌다. 오전엔 한국마이크로소프트 직원들이 교육지원사업 철학, 마이크로소프트가 바라보는 미래 역량, 마이크로소프트와 협력하는 교사 네트워크 등을 소개했다. 오후엔 '마이크로소프트 혁신 교육 전문가'(MIEE, Microsoft Innovative Educator Expert) 그룹에 가입해 있는 현직 초·중·고교 교사 7명이 다양한 수업 사례를 설명했다. MIEE는 마이크로소프트가 온·오프라인상에서 제공하는 소정의 교육을 이수한 교사들이다. 세계적으로 7500명에 이르고 국내에선 52명이 활동 중이다. 엄 교사도 그중 하나다.
지난달 12일 한국마이크로소프트에서 열린 교사 연수에서 엄태건 전주 완주 봉서초 교사가 특강을 하고 있다.[사진 한국마이크로소프트]
정보통신기술(ICT)에 기반을 둔 '교육혁명'이 일어나고 있다. 미래 세대들이 익숙하거나 익숙해져야 할 ICT를 개별적으로 공부해 수업에 활용하는 교사가 늘어나고 있다. 이들은 소셜미디어를 통해 노하우를 알리는 데도 적극적이다. 이날 강사 중 한 명인 경기도 김포 걸포초 신윤철 교사는 다른 교사들과 마인크래프트와 소프트웨어 교육을 연구한다. 코딩을 활용한 다양한 수업 방법을 동영상으로 찍어 페이스북과 유튜브에 정기적으로 올리고 있다. 신 교사 명함 뒷면엔 마인크래프트 이미지가 들어 있다.
마이크로소프트·페이스북 등 ICT 기업들도 이런 교육혁명을 적극적으로 돕고 있다. 교사 연수 프로그램을 무료로 열고 나라별로 ICT 전문성 높은 교사들 그룹(MIEE)을 만들어 지원한다. 각국 교사들이 한 자리에 만나는 포럼을 열어 국경을 떠나 전 세계 교사들이 아이디어를 공유케도 한다. 매해 열리는 이 포럼에는 80여 국가에서 300~500명의 교육자가 온다.
교사들과 한국마이크로소프트 직원들이 지난달 12일 마이크로소프트에서 개발한 교육용 도구를 놓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최정동 기자
마이크로소프트는 과학·기술·공학·수학 등 이른바 스템(STEM) 기반의 직업이 그렇지 않은 직업보다 75% 빠르게 증가할 것으로 보고 있다. 한국마이크로소프트 교육팀 김식 과장은 "오늘의 학생들이 미래의 세상을 창조할 수 있도록 돕자는 것이 마이크로소프트 교육 사업의 목적"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를 위해선 무엇보다도 학생들이 저렴하게 ICT를 접할 수 있어야 한다. 마인크래프트 안드로이드 버전을 1만 원대에 판매하고, 마이크로소프트 프로그램 이용자는 월 500원에 교육용 에디션을 이용할 수 있게 하는 것도 이런 취지"라고 설명했다.
김포 걸포초 신윤철 교사와 구병국 인천해양과학고 교사(왼쪽부터)가 한국마이크로소프트 직원들과 지난달 12일 서울 한국마이크로소프트 회의실에서 마인크래프트를 활용한 수업에 대해 토론하고 있다. 최정동 기자
협업 플랫폼으로 조별 수행평가…'무임승차' 방지도
구병국 인천해양과학고 교사는 마이크로소프트가 개발한 소셜네트워크서비스 기반의 협업 플랫폼인 '팀즈'(TEAMS)를 학생들의 협업 활동에 활용케 한다. 팀즈에선 학생별로 활동 과정이 모두 기록에 남는다. 같은 조 안에서도 어떤 학생이 열심히 했고, 어떤 학생이 '무임승차'했는지를 알 수 있다는 것이다. 구 교사는 "중간에 교사가 조언을 해주기도 쉬워, 평소 말이 없고 발표를 잘 않는 학생들을 독려하는 데에도 많은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구병국 인천 해양과학고 교사가 지난달 12일 서울 마이크로소프트 사옥에서 중고교 교사들에게 마이크로소프트 팀즈를 활용한 수행평가 사례를 사례를 소개하고 있다. 최정동 기자
ICT는 거리의 장벽도 허물고 있다. 전남 장성 중앙초 함창진 교사는 게임디자이너, 해군 장교 등 학생들이 지역에서 접하기 어려운 직업인들을 화상채팅 프로그램인 스카이프에서 만나게 한다. 장성 사창초 강신옥 교사는 학생들이 스카이프로 미국 학생들과 교류하게 하고 있다.
김포 걸포초 신윤철 교사가 마인크래프트를 활용한 수업에 대해 설명하는 동영상.
성시윤 기자 sung.siyoon@joongang.co.kr